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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첫 동계올림픽 챔피언, 미국에서 제2의 고향을 찾다

보이치에흐 포르투나는 1972년 폴란드 최초의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땄다. 하지만 귀국 후 삶은 힘들었고, 미국행이 새 출발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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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ki jumper in flight over a large hill during a Winter Olympics competition in the 1970s.
이미지: Sport.pl

점프 한 번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 폴란드 스포츠에서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선수는 나라에 사상 첫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안긴 스키점프 선수 보이치에흐 포르투나다. 그 뒤의 이야기는 훨씬 덜 화려하다.

삿포로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포르투나 이전까지 폴란드가 딴 동계올림픽 메달은 세 개뿐이었다. 1960년 스피드스케이팅의 엘비라 세로친스카가 딴 은메달 한 개, 같은 해 스피드스케이팅의 헬레나 필레이치크와 1956년 노르딕 복합의 프란치셰크 곤시에니차그론이 딴 동메달 두 개였다.

포르투나는 삿포로 대회의 우승 후보가 아니었다. 국제대회에서 내세울 만한 성적도 없었다. K-86 노멀힐에서 6위를 했는데, 그것만으로도 이미 아주 훌륭한 결과였다.

닷새 뒤 K-110 라지힐 1차 시기에서 그는 111m를 날았다. 2차 시기는 87.5m로 부진했다. 그래도 그는 스위스의 발터 슈타이너를 불과 0.1점 차로 제치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왜 폴란드를 떠났을까?

공산주의 시절 폴란드(PRL)에서 올림픽 챔피언으로 사는 일은 화려하지 않았다. 포르투나는 그 성공을 다시 이루지 못했다. 그는 코치 자리를 제안받았지만 월급이 800즈워티뿐이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택시 기사가 되었는데 이쪽도 벌이가 시원치 않았다. 이런 상황은 그의 정신 건강에 타격을 주었고, 그는 술에 의지하게 되었다.

1986년 그는 새 출발을 할 힘을 냈다. 자코파네를 떠나 미국으로 건너가 청소 같은 단순한 일을 했고, 잘 적응했다. 1989년 폴란드로 돌아왔지만 잠깐뿐이었다.

1990년대에 다시 미국으로 가서 포르투나 서비스 주식회사(Fortuna Service Inc.)라는 회사를 세웠다. "도장 회사를 운영했고 도장공 여섯 명을 고용했어요. 35만 달러짜리 집을 사려고 대출도 받았죠." 그는 나중에 자신의 책에 이렇게 썼다. 그는 폴란드 북동부 도시 수바우키 출신의 여성과 결혼하기도 했다.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2005년부터 포르투나는 다시 폴란드에 살고 있다. 수바우키에서 40km도 안 떨어진, 아내 가족의 땅이 있는 고르차차에서다. 그는 지금도 미국을 제2의 조국이라고 부른다.

2025년 2월 인터뷰에서 그는 미국이 없었다면 아마 자코파네 위쪽 언덕인 구바우프카 근처에 앉아 누군가 맥주 한 잔 사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거라고 말했다. 스포츠에서 키운 야망이 자신을 그런 운명에서 막아주었다고 덧붙였다.

#ski jumping#wojciech fortuna#olympics#sapporo#po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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